[TEXT] 밖이 되살리거나 오염시킨 안, 그래피티적 예술

양효실 (미술평론가) 

힙합을 즐겨들으며 자연스레 그래피티를 접한 십 대 소년 지알원(GR1), 세계 중요한 그래피티 ‘성소’와 공공장소에 자신의 시그니쳐를 남기는 불법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살았던 이십 대, 그리고 2016년 이후로는 “서울을 거점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로컬(local)’로” 전유하면서 미술관에서 회화, 영상, 설치와 그래피티 스타일을 접목한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 지알원의 2023년 신작은 대구예술발전소 근처에서 주워 온 스티로폼으로 제작한 입체 <Balcon Project>, 발전소 인근 공장 지대에 거주하는 불법 체류자를 포함한 미얀마 이주노동자 10인을 인터뷰한 영상 <연무 (Haze)>와 이들 미얀마 청년들의 인물화 <Black Painting – Myanmar men)>로 구성되었다(발전소 결과 보고전 전시에는 영상이 같은 시간대 서울 개인전 《대각선》에는 이들 전작이 출품되었다). 그래피티로 대표되는 스트리트 아트는 국가와 민족, 혹은 사유재산과 같은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경찰의 감시를 피해 넘나드는, 단지 상상의 위반이 아닌 공권력과의 마찰과 체포를 감수해야 하는 물리적-물질적 ‘증거’를 흔적으로 남기는 행위-실천이다. 공공기관으로서의 미술관의 경계 안에서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는 관행인 미술로의 지알원의 안착은 일견 투항으로 보이는데, 이는 미술계가 그의 행위를 ‘예술’로 인정한다는 것, 그가 바깥에서의 행위-실천에 대한 흥미나 그것의 의의를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하자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말하자면 안-과-밖의 이분법을 고수하며 밖에 있을 이유나 정당성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을 만큼 그래피티 베테랑-전문가-고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방향은 미술관이라는 ‘안’이었고, 중견 예술가로서 이제 그는 빠르고 즉흥적인 제스쳐 대신에 과정과 사유, 혹은 담론에 기대를 걸 때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피티의 미술관 유입은 모든 새로운-위반 적 문화의 자본주의적-중심 문화로의 회복이라는 공식의 일환이고, 중심은 결국 주변에 의존하며 차이와 다양성의 수혈을 받으며 ‘포스트’ 적인 상태로 혹은 포스트들에 의지해 생존-기생한다는 역설의 예시일 것이다. 

영상에 나오는 미얀마 출신 이주 노동자 청년들의 입을 통해, 이곳으로 이주한 거의 모든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자본화가 복기 되면서 동시에 아웅 산 수치를 둘러싼 미얀마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다가 이곳으로 피신해 본국에서 반-국가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에 지원금을 보내는 청년 활동가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들은 단일한 ‘이주 노동자’가 아니며, 이들의 욕망, 일상, 관점은 복수이다. 특히 내가 좋아한 작업은 이들 10명의 서글서글하고 선한 눈빛을 가진 미얀마 청년들을 검은 캔버스에 아크릴 마커와 페인트 마커로 ‘그린’ 혹은 ‘쓴’ 인물 초상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음화로도 양화로도 보이는, 동시에 그 둘이 보이는 이 작업, 조명을 들고 봐야 내 시선을 되돌려주는 ‘재현적’ 인물-동아시아 남성이 등장하는 이 분열적 ‘텍스트’는 회화인 척하는 그래피티이다. 붓이 아니라 펜으로, 면을 채우는 게 아니라 선으로 유사-인물화, 유사-회화처럼 읽히도록 쓰여진 텍스트-이미지에서 보이는 것은 합법적 공공성에서 숨어있는,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도망 다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친족’인 탈/포스트-국가적 청년들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이름을 쓰기 위한 도구로서의 페인트 마커로 지알원은 자기를 닮은, 자기가 알아본 타자를 그리고-썼다. 지알원의 그래피티는 글자 그대로 거리 예술인 상태에서 어디에서나 반복-확장되는 물리적인 삶과의 접속을 위한 ‘숨은’ 장치로 변용되었다. 이는 대구발전소 근처에서 주워 온 스티로폼으로 만든 유사-조각-설치 작업에서도 역시 반복되는데, 발전소에 입주하면서 스티로폼을 줍기 시작한 작가에 따르면 “상품보호 부산물 쓰레기 스티로폼”에 대한 관심과 주목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안’의 제품을 감싸고 최종적으로는 ‘바깥’으로서 버려지는/삭제되는 이 스티로폼들을 탑처럼 쌓고 “불량 스프레이에 응축된 에너지에 충격을 가하고 터트려 폭발하듯이 분출되는 스프레이를 그 위에 뿌리는” 즉흥의 퍼포먼스와 조각적 조형을 통해 유사-기념비-조각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지알원은 이제 ‘안’에서 바깥을 표식한다. 안과 밖의 이분법 자체를 즐긴다. 안이면서 밖인 삶의 스펙터클을 즐긴다. 이것은 충분히 오래 바깥이라 불리는 곳에 머물렀던 사람이 마침내 확보한 시야의 크기, 구조에 근거한다. 지알원은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며 즐기다가 실제로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을 ‘마침내’ 겪은 뒤로는, 안에 바깥을 ‘묻히는’ 즐거움을, 투항인지 위반인지 유희인지 깨달음인지가 식별되지 않는 스타일로 근 이십  년 묵은 자신의 전술을 구사한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