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con Project
installation view, 2023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TEXT] 밖이 되살리거나 오염시킨 안, 그래피티적 예술

양효실 (미술평론가) 

힙합을 즐겨들으며 자연스레 그래피티를 접한 십 대 소년 지알원(GR1), 세계 중요한 그래피티 ‘성소’와 공공장소에 자신의 시그니쳐를 남기는 불법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살았던 이십 대, 그리고 2016년 이후로는 “서울을 거점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로컬(local)’로” 전유하면서 미술관에서 회화, 영상, 설치와 그래피티 스타일을 접목한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 지알원의 2023년 신작은 대구예술발전소 근처에서 주워 온 스티로폼으로 제작한 입체 <Balcon Project>, 발전소 인근 공장 지대에 거주하는 불법 체류자를 포함한 미얀마 이주노동자 10인을 인터뷰한 영상 <연무 (Haze)>와 이들 미얀마 청년들의 인물화 <Black Painting – Myanmar men)>로 구성되었다(발전소 결과 보고전 전시에는 영상이 같은 시간대 서울 개인전 《대각선》에는 이들 전작이 출품되었다). 그래피티로 대표되는 스트리트 아트는 국가와 민족, 혹은 사유재산과 같은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경찰의 감시를 피해 넘나드는, 단지 상상의 위반이 아닌 공권력과의 마찰과 체포를 감수해야 하는 물리적-물질적 ‘증거’를 흔적으로 남기는 행위-실천이다. 공공기관으로서의 미술관의 경계 안에서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는 관행인 미술로의 지알원의 안착은 일견 투항으로 보이는데, 이는 미술계가 그의 행위를 ‘예술’로 인정한다는 것, 그가 바깥에서의 행위-실천에 대한 흥미나 그것의 의의를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하자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말하자면 안-과-밖의 이분법을 고수하며 밖에 있을 이유나 정당성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을 만큼 그래피티 베테랑-전문가-고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방향은 미술관이라는 ‘안’이었고, 중견 예술가로서 이제 그는 빠르고 즉흥적인 제스쳐 대신에 과정과 사유, 혹은 담론에 기대를 걸 때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피티의 미술관 유입은 모든 새로운-위반 적 문화의 자본주의적-중심 문화로의 회복이라는 공식의 일환이고, 중심은 결국 주변에 의존하며 차이와 다양성의 수혈을 받으며 ‘포스트’ 적인 상태로 혹은 포스트들에 의지해 생존-기생한다는 역설의 예시일 것이다. 

영상에 나오는 미얀마 출신 이주 노동자 청년들의 입을 통해, 이곳으로 이주한 거의 모든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자본화가 복기 되면서 동시에 아웅 산 수치를 둘러싼 미얀마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다가 이곳으로 피신해 본국에서 반-국가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에 지원금을 보내는 청년 활동가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들은 단일한 ‘이주 노동자’가 아니며, 이들의 욕망, 일상, 관점은 복수이다. 특히 내가 좋아한 작업은 이들 10명의 서글서글하고 선한 눈빛을 가진 미얀마 청년들을 검은 캔버스에 아크릴 마커와 페인트 마커로 ‘그린’ 혹은 ‘쓴’ 인물 초상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음화로도 양화로도 보이는, 동시에 그 둘이 보이는 이 작업, 조명을 들고 봐야 내 시선을 되돌려주는 ‘재현적’ 인물-동아시아 남성이 등장하는 이 분열적 ‘텍스트’는 회화인 척하는 그래피티이다. 붓이 아니라 펜으로, 면을 채우는 게 아니라 선으로 유사-인물화, 유사-회화처럼 읽히도록 쓰여진 텍스트-이미지에서 보이는 것은 합법적 공공성에서 숨어있는,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도망 다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친족’인 탈/포스트-국가적 청년들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이름을 쓰기 위한 도구로서의 페인트 마커로 지알원은 자기를 닮은, 자기가 알아본 타자를 그리고-썼다. 지알원의 그래피티는 글자 그대로 거리 예술인 상태에서 어디에서나 반복-확장되는 물리적인 삶과의 접속을 위한 ‘숨은’ 장치로 변용되었다. 이는 대구발전소 근처에서 주워 온 스티로폼으로 만든 유사-조각-설치 작업에서도 역시 반복되는데, 발전소에 입주하면서 스티로폼을 줍기 시작한 작가에 따르면 “상품보호 부산물 쓰레기 스티로폼”에 대한 관심과 주목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안’의 제품을 감싸고 최종적으로는 ‘바깥’으로서 버려지는/삭제되는 이 스티로폼들을 탑처럼 쌓고 “불량 스프레이에 응축된 에너지에 충격을 가하고 터트려 폭발하듯이 분출되는 스프레이를 그 위에 뿌리는” 즉흥의 퍼포먼스와 조각적 조형을 통해 유사-기념비-조각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지알원은 이제 ‘안’에서 바깥을 표식한다. 안과 밖의 이분법 자체를 즐긴다. 안이면서 밖인 삶의 스펙터클을 즐긴다. 이것은 충분히 오래 바깥이라 불리는 곳에 머물렀던 사람이 마침내 확보한 시야의 크기, 구조에 근거한다. 지알원은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며 즐기다가 실제로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을 ‘마침내’ 겪은 뒤로는, 안에 바깥을 ‘묻히는’ 즐거움을, 투항인지 위반인지 유희인지 깨달음인지가 식별되지 않는 스타일로 근 이십  년 묵은 자신의 전술을 구사한다. 

2023

[TEXT] 대각선 diagonal

주시영(디렉터,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지알원 개인전 / 2023. 10. 28. – 12. 2.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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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은 2023년 10월 28일(토)부터 12월 2일(토)까지 지알원 개인전 《대각선 diagonal》을 개최한다. 《목줄 없는 개들》, 《부딪치는 풀》 이후 열리는 세 번째 개인전 《대각선》은 그래피티 작업에서 출발한 지알원의 회화를 새롭게 소개하고, 그의 회화에서 파생된 조각과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의 경계를 동(남)아시아로 확장시켜 규정함으로써 홍콩-한국-미얀마를 주목한다. 현대사의 흐름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와 쟁점은 세 국가 사이를 오가며 묘하게 겹친다. 작가는 스스로가 규정한 로컬의 경계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자신을 둘러싼 지역(아시아) 안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교차점을 총 네 개의 범주인 #붉은 홍콩, #Balcon Project, #한국 색, #Black Painting으로 구성하여 전시 《대각선》을 전개해 나간다.

지알원의 회화가 갖는 그래피티graffiti 정신은 지알원과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래피티가 도시의 공공 공간에 침투하여 메시지를 내는 것으로 자본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관한 일종의 담론 형성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지알원은 많은 이들이 간과하거나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는 이의 눈앞에 무심하게 내놓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자신의 작업 속에 숨어있는 힌트를 슬쩍 꺼내놓는 방식을 취할 뿐이다. 힌트를 발견한 이들은 서로 질문을 던지고, 이미지를 떠올리며, 채워지지 않은 빈 퍼즐 조각을 상상해 나갈 수 있다. 지알원의 회화가 담은 날카롭고 매서운 메시지와 무디고 따뜻한 공감의 공존이 담론의 여지를 만든다. 
금지된 공간에서 유한한 시간의 제약 내에서만 유효한 그래피티는 곧 사라질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고 한다. 사회의 부산물로써 잠시나마 그 공간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점유하는 것이다. 작가는 부산-서울-시카고를 거치면서, 거주하거나 머물렀던 여러 도시에 그래피티 작업을 남겼다. 그래피티가 허락되는 도시의 주변부는 자본의 침전물이 쌓이고, 충돌로 떨어져 나간 파편이 모여들고, 먼지와 쓰레기가 뒹구는 곳이었다. 그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곳에서 경험한 수많은 충돌과 교차점이 그의 회화 안에 자연스레 숨어들었다. 마천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목에서 발견한 경계의 경험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작가는 동시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관람자의 눈앞으로 성큼 끌어당겨 놓는다. 

#붉은 홍콩
지알원의 시티스케이프(cityscape) 시리즈 중 하나로 20세기 말,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장면과 21세기 초, 홍콩의 민주화 운동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소환한다. ‘서울’에 이은 두 번째 시티스케이프 시리즈 〈붉은 홍콩〉에서 작가는 그래피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밀레니엄과 함께 붉은 땅이 되어버린 홍콩 거리의 벽면 사이사이에 검은색의 민주화운동 장면이 끼어든다. 충돌은 폭발적이고 일회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것일 수 있다. 작가는 전시의 키워드인 충돌을 벽면에 펼쳐놓았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보이는 이 그림들은 힘의 균형과 불균형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이고 단계적인 힘이 붉은 홍콩 거리에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읽힌다. 거리의 벽에 각자가 그리고자 하는 그래피티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충돌과 조화의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작가는 오랜 경험을 통해 배워온 것 같다. 흐트러져 있는 듯 보이지만, 작업의 에너지는 언제라도 자신을 뿜어낼 준비를 한 채 불균형과 균형 사이에 질서를 부여한다. 〈붉은 홍콩〉은 지알원이 주목하는 충돌에 대한 힌트를 던지는 듯하다. 각자의 영역 확장에만 집중된 결과로 파생된 충돌은 피해를 낳는다. 그는 힘의 균형과 질서를 깨뜨리는 충돌에 주목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자들과 그들이 모이는 주변부를 살핀다. 

#Balcon Project
지알원은〈Balcon Project〉*에서 대량생산과 소비중심의 도시 안에서 버려진 것들을 위한 모뉴먼트monument를 세운다. 지알원은 무엇을 기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고자 하는가. 도시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이 기념비들은 고도화된 산업사회의 미니어처다. 대량생산, 품질향상, 안전배송의 과정에서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것들로써 대개는 쓰레기로 폐기되어야 할 것들임에도 작가는 이들을 탈락시키지 않는다. 도시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자본의 이동경로를 충실히 따라갈수록 더 많은 부산물이 생겨난다. 이것은 쓸모를 다한 물건들과 쓰레기들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간다움, 도덕, 윤리, 규범의 경계에서도 우리는 버려진 양심을 발견한다. 보이지 않는 가치의 충돌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그 값의 변화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목표와 목적을 지향하는지, 내 삶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사라진 지금의 현실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지알원은 쓰레기를 모아 높이 세워놓고, 스프레이로 뒤덮는 행위를 통해 충돌의 기념비를 쌓아올렸다. 스프레이 작업은 물리적인 충돌과 재료의 충돌을 동반한다. 스프레이로 색을 입히기 위해서는 노즐을 통해 응집된 힘을 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한데 엉긴 에너지가 분출되는 힘을 통해 그의 작업이 완성된다. 맞부딪치는 힘의 작용이 기념비를 물들인 것이다. 화려한 모뉴먼트의 행렬이 도시의 경계를 따라 걷는다. 

#한국색
한국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 이후, 대규모 재벌기업들의 주도적 성장으로 수출 중심의 제조업체들도 성장 곡선을 탔다. 구로공단**이 전신인 이곳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역시 구미, 울산 등과 함께 수출 중심의 산업을 이끌었던 최전방에 있었다. 한국 산업의 구조적 특징은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형성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개개인의 삶에 ‘한국 색’을 입혔다. 지알원은 한국의 색을 한국 산업의 산물(그것이 주산물이든, 부산물이든)로 보고,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색의 산업용 스프레이 30여 개의 컬러를 매칭하여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총 496개의 색 조합을 만들었다. 그는 이것을 〈한국색〉으로 명명하는 것으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과 그 과정에 숨어있는 크고 작은 496개의 이야기를 던진다. 아버지 세대의 노동과 자녀 세대의 노동을 동시대 안에서 해석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성장 그래프는 대각선을 그리며 급격하게 뻗어나갔다. 모두가 바라보던 하나의 목표에 다가갈수록, 우리가 놓아버린(혹은 놓쳐버린) 가치의 값은 어떻게 환산할 수 있을까. 글로벌리즘globalism을 외치던 목소리 반대편에서 로컬리즘localism이 대두된다. 삶의 장소로서 로컬을 지향하는 태도가 사회적 충돌을 완화할 수 있다고 할 때, 지알원이 규정하는 로컬의 범위는 내가 사는 지역과 국가를 넘어 아시아로 확대된다. ‘아시아인 지알원’은 한국산 산업용 스프레이를 들고 ‘한국색’을 입힌다. 두 면을 맞댄 한국색의 반복적 패턴은 한국-아시아-글로벌 삼각의 어지러운 반복으로 번진다. 

#Black Painting
검은 방에 들어선 관람객은 인터뷰 영상 〈연무〉에 등장하는 10인의 미얀마인의 얼굴에 둘러싸인다. 지알원이 그린 ‘얼굴’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지알원은 2021년 실험적으로 시도했던 영상작업 〈#Miyanmar Project〉를 통해 이미 미얀마의 상황을 그의 방식대로 보여준 바 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마주한 작가와 인물들의 대화 뒤로, 관람객 역시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주에 관한 많은 이슈들과 사회적 충돌 저편에서 작가는 동시대를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듣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통계 속 숫자에 숨겨진 이들,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아 외면되거나 지나쳐버려진 아시아 전역의 민주화 운동과 희생의 실재를, 굳이 플래시를 켜서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도 그러한 역사를 지나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사회적 충돌의 현장이 우리 삶 가운데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듯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 검은 방을 가득 채운다. 검은 방 속, 그가 채워놓은 얼굴들은 어딘가에서 본 얼굴들이다. 이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과거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문제들이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지알원의 회화가 갖는 메시지와 공감, 자기주장은 전시 《대각선》에서 한층 강화된다. 힘의 충돌, 경계, 교차점, 부산물, 희생물과 같은 맥락 안에서 선회하던 작업들은 서서히 구조적 문제에 도달한다. 그리고 작가는 종국에 도달한 구조가 텅 빈 얼개가 아닌 개개인의 집합인 것을 놓치지 않는다. 전시는 구조적 문제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얼굴’을 응시하도록 유도한다. 관람자의 얼굴과 작가의 얼굴, 익명의 얼굴들이 전시장 안에서 교차하는 지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시도는 현재, 지알원이 자신의 회화가 주장하는 바를 온전히 의식하고 있으며, 회화를 통해 그가 던지는 개인과 구조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 모두의 시선이 교차하는 곳에 놓이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Balcon Project》에서 balcon은 balcony(발코니)를 줄여 사용하는 말이다. 작가는 집 내부와 외부 사이에 존재하는 발코니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가져와 작품명으로 사용하였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 서울시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에 세워진 국가산업단지이다.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이 위치한 지역 역시 그 일대에 포함된다. 현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구로디지털단지 또는 가산디지털단지로 불린다.

[TEXT] 대각선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지알원(GR1)은 사회에 잔존하는 문제와 쟁점을 바라보고 그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충돌을 포착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2000년대 초반에 그래피티(graffiti)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로 작업을 시작한 그는, 회화와 영상을 포함한 여러 미디엄으로 그 작업세계를 확장해나가며 자신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저항문화의 산물이자 제도의 주변부에 머물던 장르로서의 ‘그래피티’는 정치적 움직임을 내재한 채로 사회적 현상을 포착하여 공공건물이나 기물에 태깅(tagging)을 남기는 것을 시초로 한다. 이는 사회 속에 잔재하는 다양한 사건을 이미지와 기표로 발화하는 행위이기도 하며, 동시에 도시 전체를 일종의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그 내부에는 익명성이 잠재한다고 짐작할 수도 있으나, 작가 지알원은 오히려 자신을 주체적 발화자로 상정함으로써 논점을 사회의 표면 위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의 기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며 일련의 소동을 겪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0년 미국 시카고에서 그래피티를 이어가던 그는 반달리즘(vandalism) 혐의로 체포되어 몇 번의 재판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스트리트 아트로 전향한 이후에도 몇 번의 사회적 쟁점을 토대로 고초를 겪었다. 태국 방콕으로 거점을 옮겨 진행했던 동물원의 인간 중심적 행태를 비판한 ‹덤보(Dumbo) 프로젝트›(2016)나 서울에서 세월호 사건을 토대로 했던 ‹Yellow Ribbon 프로젝트›(2014), 대통령 풍자벽화와 철거이슈가 있었던 ‹감시사회›(2014) 등으로 경험한 대중적 진통을 발판 삼아, 그는 자신의 작업을 캔버스로 옮겨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특정 사건에 자신의 시선을 개입하는 것이 아닌 현상을 그 자체로 화면 위에 ‘던져내도록' 그 방법론을 전향하여,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사건이나 자신의 주변적 이야기로 그 초점을 옮겨왔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다양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양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작업의 시선을 이동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그가 그래피티 및 스트리트 아트의 본토인 미국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체화한 다문화적 사회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 경험한 도시적 스케일에서 체감한 이질성은 곧 그로 하여금 한국과 동아시아로 그 반경을 구체화하도록 만들었으며, 자신의 로컬리티를 드러내며 서양의 그래피티 양식을 동양의 풍경 속에 문화적 흔적으로 기록하는 도시 작업을 지속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발견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충돌’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확장되는 작업은 다양한 부딪힘과 굴절을 토대로 여러 ‘부산물’로서의 작업을 형성해 나갔다. 

작가가 피부로 감각하고 경험한 것은 회화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 위에 지표로 남겨진다. 그가 관찰한 현상은 화자의 특정한 시선이나 시점을 유실한 상태로 표면 위에 ‘툭 던져놓아지며' 나름의 덩어리감을 획득한다. 특히 작업의 소재를 선택하는 과정이 드러내는 방법론은, 현상을 ‘포착’하고 순간을 ‘남겨’왔던 그래피티적 습성이 흔적처럼 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그의 작업은 그래피티를 넘어 회화와 영상, 입체로 그 미디엄을 확장해 나간다. 메시지의 직접적인 표출을 꾀하는 다매체적 활용은 그 기저의 성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예술 일반과 그래피티의 문법을  매개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이제 그는 작가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며 그 현상을 도시 전체가 아닌 예술적 미디엄 위에 현현하도록 만들고 있다. 

개인전 «대각선/diagonal»은 그의 이전 시리즈부터 최근의 작업까지, 변곡점을 마주한 시점에서 그가 진행해왔던 일련의 시리즈를 정리하고 다시 되짚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전시의 제목인 ‘대각선'은 이웃하지 않은 두 꼭짓점을 이어내는 선을 의미하는데, 이는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의 시리즈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연결 지점을 형성하며 마주하며 만들어지는 ‘변'을 은유하는 것이다. 

‹한국색›(2022)은 작업의 시초에 놓인 그래피티 문화에서 온 로컬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피티는 공업용 라커, 즉 스프레이를 주매체로 삼는다. 특히 지알원이 한국에서 그래피티를 시작하던 시점에 보급되었던 산업용 라커는 30여 개의 단순한 색감과 높은 불량률, 낮은 품질을 자랑하며 작업의 공정에 여러 어려움을 발생시켰다. 작업의 과정에서 재료적 한계점을 겪은 작가는 일련의 성찰을 통해, 스프레이가 생산되는 공정에 소비되는 노동력이 이주 노동자를 포함한 다국적 인력이 투여되고 있다는 근원적 사실을 발견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개발도상국을 탈피하기 위해 자국의 자본을 공고히 만들던 시절 발생했던 일련의 사회적 흐름과도 유사성을 지닌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에 내재된 공정과 한국의 산업구조 사이의 관계성을 작품으로 옮겨내었다. 두 가지의 색감이 교차되며 이루어지는 변으로서의 삼각형이 이어지는 본 작업은 총 496점의 회화로 완성되며, 한국 전통 문양에서의 기하학적 삼각형의 패턴과 그래피티에서부터 이어온 날카로운 필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Balcon Project›(2023)는 산업 공정의 부산물로 등장하는 스티로폼을 활용한 입체 작품이다. 스티로폼은 산업 생산물을 보조하는 완충재로 제작되었으나 쉽게 길거리에 버려지며, 한국 사회의 경제를 부흥시킨 산업의 공정의 잔재를 도시에 시각화하는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이다. 작품은 이러한 부산물을 은유하는 일종의 교차점에 대한 기념비로 등장하며 전시장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입체 위에 입혀진 색은 품질에 문제가 있거나 생산된 지 오래되어 사용이 불가한 스프레이를 활용한 것이다. 라커의 표면을 터트려 내부에 응축된 안료가 폭발하는 순간은 즉흥적 분출을 통해 색감을 덧입혀내며 나름의 ‘충돌’을 시각화한다. 

‹Black Painting - Myanmar men›(2023)은 ‹한국색› 시리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방문했던 김해의 공단에서 마주한 이주 노동자 집단을 담은 10점의 인물화를 포함한다. 이주 노동자는 대구 예술발전소 인근의 경북지역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미얀마 남성들로, 국내 공장에서 노고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인물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검은색의 메마른 배경 위에 유광으로 그려진 인물의 선은 관객의 시선이 위치하는 곳에 따라 형상을 드러내기도, 감추어내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사회 속에 내재한 이주 노동자의 비가시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통계상의 수치로만 인식되는 숨은 존재에 대한 시선을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와 공명하는 단 채널 영상 ‹연무(Haze)›(2023)는 10인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터뷰를 드러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삶을 발화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얀마에 내재한 정치적 문제들을 가시화하고 있다. 미얀마를 둘러싼 군부정권과 민주화 운동, 그 가운데 아시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한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반의 현상을 역설한다. 

‹붉은홍콩(Red Hongkong)›(2023) 역시 그가 주변에서 마주한, 홍콩에 거주하는 동료에게 전해 들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업이다. 이는 작가가 기존에 진행하던 ‹Cityscape›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도시의 풍경과 문제 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2019년에 가시화된 홍콩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붉은색’을 통한 관계성으로 엮어내고 있다. 중국으로 본토화되어가는 홍콩의 모습은 붉은 색상으로 가시화되며, 검은색으로 그려진 풍경은 시위 당시에 드러나던 인물의 도상을 담고 있다. 불완전한 구도의 조형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홍콩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내재한 형태인 동시에, 한국이라는 도시에서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는 동아시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도모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지알원은 그가 계승하고자 했던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의 정신을 회화를 포괄한 다양한 미디엄으로 옮겨냄으로써 다시금 이를 복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행동주의적 저항의식을 펼쳐나가던 정치적 공간을 곧 캔버스와 영상 등의 미디엄 위로 옮겨내었다. 새로운 저항을 개진하고자 했던 일련의 시도, 그리고 현상을 포착하여 예술의 맥락 위에서 사유할 것을 촉구하는 과감한 소재의 선택은, 작가로 하여금 그의 과거에서부터 회고적으로 이어지는 질서와 정통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시금 지금의 예술이 조명하고 발화해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역설하고 있다. 


2023

[NEWS] 대각선 / diagonal

지알원 개인전


<대각선/diagonal>

기간 : 2023.10.28(Sat) - 12.2(Sat)

장소 :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전관(서울 금천구 범안로9 23)

2023.10.28.() – 12.2.()

주최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영일프레시젼

디렉터   주시영
큐레이터   김민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이재희
에듀케이터   유상아
운영지원   설미숙

서문   주시영
비평글   문현정
사진촬영   정정호
디자인   김박현정
미디어·공간설치   최민석(그린레벨)
사운드   베모, 류한이
영상도움   김마필, 김민제
사진인쇄   인아웃(INOUT)


*2023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5053 Series
Paint marker and spray paint on paper, 224cm x 152cm * 4pcs, 2023
@테미창작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