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대각선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지알원(GR1)은 사회에 잔존하는 문제와 쟁점을 바라보고 그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충돌을 포착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2000년대 초반에 그래피티(graffiti)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로 작업을 시작한 그는, 회화와 영상을 포함한 여러 미디엄으로 그 작업세계를 확장해나가며 자신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저항문화의 산물이자 제도의 주변부에 머물던 장르로서의 ‘그래피티’는 정치적 움직임을 내재한 채로 사회적 현상을 포착하여 공공건물이나 기물에 태깅(tagging)을 남기는 것을 시초로 한다. 이는 사회 속에 잔재하는 다양한 사건을 이미지와 기표로 발화하는 행위이기도 하며, 동시에 도시 전체를 일종의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그 내부에는 익명성이 잠재한다고 짐작할 수도 있으나, 작가 지알원은 오히려 자신을 주체적 발화자로 상정함으로써 논점을 사회의 표면 위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의 기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며 일련의 소동을 겪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0년 미국 시카고에서 그래피티를 이어가던 그는 반달리즘(vandalism) 혐의로 체포되어 몇 번의 재판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스트리트 아트로 전향한 이후에도 몇 번의 사회적 쟁점을 토대로 고초를 겪었다. 태국 방콕으로 거점을 옮겨 진행했던 동물원의 인간 중심적 행태를 비판한 ‹덤보(Dumbo) 프로젝트›(2016)나 서울에서 세월호 사건을 토대로 했던 ‹Yellow Ribbon 프로젝트›(2014), 대통령 풍자벽화와 철거이슈가 있었던 ‹감시사회›(2014) 등으로 경험한 대중적 진통을 발판 삼아, 그는 자신의 작업을 캔버스로 옮겨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특정 사건에 자신의 시선을 개입하는 것이 아닌 현상을 그 자체로 화면 위에 ‘던져내도록' 그 방법론을 전향하여,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사건이나 자신의 주변적 이야기로 그 초점을 옮겨왔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다양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양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작업의 시선을 이동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그가 그래피티 및 스트리트 아트의 본토인 미국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체화한 다문화적 사회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 경험한 도시적 스케일에서 체감한 이질성은 곧 그로 하여금 한국과 동아시아로 그 반경을 구체화하도록 만들었으며, 자신의 로컬리티를 드러내며 서양의 그래피티 양식을 동양의 풍경 속에 문화적 흔적으로 기록하는 도시 작업을 지속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발견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충돌’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확장되는 작업은 다양한 부딪힘과 굴절을 토대로 여러 ‘부산물’로서의 작업을 형성해 나갔다. 

작가가 피부로 감각하고 경험한 것은 회화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 위에 지표로 남겨진다. 그가 관찰한 현상은 화자의 특정한 시선이나 시점을 유실한 상태로 표면 위에 ‘툭 던져놓아지며' 나름의 덩어리감을 획득한다. 특히 작업의 소재를 선택하는 과정이 드러내는 방법론은, 현상을 ‘포착’하고 순간을 ‘남겨’왔던 그래피티적 습성이 흔적처럼 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그의 작업은 그래피티를 넘어 회화와 영상, 입체로 그 미디엄을 확장해 나간다. 메시지의 직접적인 표출을 꾀하는 다매체적 활용은 그 기저의 성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예술 일반과 그래피티의 문법을  매개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이제 그는 작가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며 그 현상을 도시 전체가 아닌 예술적 미디엄 위에 현현하도록 만들고 있다. 

개인전 «대각선/diagonal»은 그의 이전 시리즈부터 최근의 작업까지, 변곡점을 마주한 시점에서 그가 진행해왔던 일련의 시리즈를 정리하고 다시 되짚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전시의 제목인 ‘대각선'은 이웃하지 않은 두 꼭짓점을 이어내는 선을 의미하는데, 이는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의 시리즈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연결 지점을 형성하며 마주하며 만들어지는 ‘변'을 은유하는 것이다. 

‹한국색›(2022)은 작업의 시초에 놓인 그래피티 문화에서 온 로컬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피티는 공업용 라커, 즉 스프레이를 주매체로 삼는다. 특히 지알원이 한국에서 그래피티를 시작하던 시점에 보급되었던 산업용 라커는 30여 개의 단순한 색감과 높은 불량률, 낮은 품질을 자랑하며 작업의 공정에 여러 어려움을 발생시켰다. 작업의 과정에서 재료적 한계점을 겪은 작가는 일련의 성찰을 통해, 스프레이가 생산되는 공정에 소비되는 노동력이 이주 노동자를 포함한 다국적 인력이 투여되고 있다는 근원적 사실을 발견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개발도상국을 탈피하기 위해 자국의 자본을 공고히 만들던 시절 발생했던 일련의 사회적 흐름과도 유사성을 지닌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에 내재된 공정과 한국의 산업구조 사이의 관계성을 작품으로 옮겨내었다. 두 가지의 색감이 교차되며 이루어지는 변으로서의 삼각형이 이어지는 본 작업은 총 496점의 회화로 완성되며, 한국 전통 문양에서의 기하학적 삼각형의 패턴과 그래피티에서부터 이어온 날카로운 필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Balcon Project›(2023)는 산업 공정의 부산물로 등장하는 스티로폼을 활용한 입체 작품이다. 스티로폼은 산업 생산물을 보조하는 완충재로 제작되었으나 쉽게 길거리에 버려지며, 한국 사회의 경제를 부흥시킨 산업의 공정의 잔재를 도시에 시각화하는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이다. 작품은 이러한 부산물을 은유하는 일종의 교차점에 대한 기념비로 등장하며 전시장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입체 위에 입혀진 색은 품질에 문제가 있거나 생산된 지 오래되어 사용이 불가한 스프레이를 활용한 것이다. 라커의 표면을 터트려 내부에 응축된 안료가 폭발하는 순간은 즉흥적 분출을 통해 색감을 덧입혀내며 나름의 ‘충돌’을 시각화한다. 

‹Black Painting - Myanmar men›(2023)은 ‹한국색› 시리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방문했던 김해의 공단에서 마주한 이주 노동자 집단을 담은 10점의 인물화를 포함한다. 이주 노동자는 대구 예술발전소 인근의 경북지역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미얀마 남성들로, 국내 공장에서 노고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인물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검은색의 메마른 배경 위에 유광으로 그려진 인물의 선은 관객의 시선이 위치하는 곳에 따라 형상을 드러내기도, 감추어내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사회 속에 내재한 이주 노동자의 비가시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통계상의 수치로만 인식되는 숨은 존재에 대한 시선을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와 공명하는 단 채널 영상 ‹연무(Haze)›(2023)는 10인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터뷰를 드러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삶을 발화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얀마에 내재한 정치적 문제들을 가시화하고 있다. 미얀마를 둘러싼 군부정권과 민주화 운동, 그 가운데 아시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한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반의 현상을 역설한다. 

‹붉은홍콩(Red Hongkong)›(2023) 역시 그가 주변에서 마주한, 홍콩에 거주하는 동료에게 전해 들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업이다. 이는 작가가 기존에 진행하던 ‹Cityscape›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도시의 풍경과 문제 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2019년에 가시화된 홍콩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붉은색’을 통한 관계성으로 엮어내고 있다. 중국으로 본토화되어가는 홍콩의 모습은 붉은 색상으로 가시화되며, 검은색으로 그려진 풍경은 시위 당시에 드러나던 인물의 도상을 담고 있다. 불완전한 구도의 조형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홍콩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내재한 형태인 동시에, 한국이라는 도시에서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는 동아시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도모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지알원은 그가 계승하고자 했던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의 정신을 회화를 포괄한 다양한 미디엄으로 옮겨냄으로써 다시금 이를 복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행동주의적 저항의식을 펼쳐나가던 정치적 공간을 곧 캔버스와 영상 등의 미디엄 위로 옮겨내었다. 새로운 저항을 개진하고자 했던 일련의 시도, 그리고 현상을 포착하여 예술의 맥락 위에서 사유할 것을 촉구하는 과감한 소재의 선택은, 작가로 하여금 그의 과거에서부터 회고적으로 이어지는 질서와 정통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시금 지금의 예술이 조명하고 발화해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역설하고 있다. 


2023